신재돈 :  해남자화상

녹우당충헌각 2017.7.2~8.30

모든 일은 그날 시작 되었다.

어머니의 눈물.



세상을 살다보면 예기치 못한 행운을 만나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어려움도 맞이하게 된다. 대부분 행운과 불행은 짝을 지어 함께 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고난은 인생의 날개라고들 한다. 그러나 고난이 행운과 함께 오기는 무척 어렵고 슬픔을 참는 인내와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병풍도 인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였다. 이 사고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과 교사들 및 일반인 승객 총 476명 중 172명만이 구조되고 295명이 사망했으며 9명이 실종되었다.” 그날 우리는 북방한계선 위 백령도에서 며칠인가를 짙은 안개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며칠 만에 드디어 움직이게 된 청해진 해운 소속 여객선을 타고 인천으로 나오는 4시간동안 내내 세월호 속보와 속보 생중계를 보게 되었다. 그 날 이후 4년 동안 추진 중이던 백령도 평화프로젝트는 중단되고, 6월 어느 날 몇몇 작가와 나는 팽목항에 가기위해 15년간 비어 있던 임하도수련원 문을 열고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우리의 발걸음은 북에서 남으로 향하게 되었다. 


  신재돈 작가는 현재 호주 멜버른에 살고 있다. 60년대 생 80년대 학번 광주가 고향인 작가는 두해에 걸쳐 일시적으로 백령도에서 머무르며 일련의 작품을 제작해 프로젝트에 참가 하고 있었다. 이국땅에 살다 보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더 깊이를 가지고 생각하게 된다. 직접적인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고, 일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간적 타자의 마음 한구석의 돌덩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크고 무거워진다. 본래 인간과 사회 존재에 대해 천착해 온 작가가 한국 땅을 벗어나 있었던 상황은 오히려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이 그의 작품에서 더욱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게 한 요인이기도 하다. 남북의 분단과 연례적으로 벌어지는 남북의 정치적 대치상황, 김정일 사망이후 북의 정권교체. 매년 세계를 뜨겁게 달구는 북의 핵무기개발 소식. 연평도 포격을 시작으로 미사일 개발과 발사. 이 모든 사건은 오히려 국내에 살고 있는 당사자인 우리보다 해외교포들에게 더욱 심각하게 느껴지곤 한다. 

  신재돈 작가는 한국과 호주를 오가며 백령도 프로젝트를 통해 남북의 정치적 거리감과 인간적 한계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신재돈작가가 해남에 오게 된 것도 시작은 그 날로부터 비롯되었다. 신재돈 작가가 2014년 10월 해남 문내면 임하도, 이마도스튜디오에서 머무르며 팽목항을 오가던즈음, 10월 14일 해남 우수영 5일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시작으로 해남의 모습은 2017년 오늘 까지 계속작품에 이어지고 있다. 해남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 중 녹우당의 공재와 팽목의 어머니들은 예술가인 그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우는 여자 Weeping Woman>는 진도 바다를 뒤로하고 울고 있는 여자를 그린 작품이다. 팽목에서 슬픔을 견디며 울고 있는 어머니의 눈물이다.게다가 이 세상 무엇 보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심장을 잃은 대한민국 모든 어머니의 눈물이다. 그리고 3년이 훌쩍 지난 지금 심장을 잃은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 주는 일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만 슬픔을 참고 인내하고 노력하는 어머니들을 지켜보는 지난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있다. 더욱 큰 참사이고 큰 파장이다. 신재돈 작가의 <우는 여자 Weeping Woman>의 어머니의 눈물은 그날 시작되었다. 한 장의 그림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도 그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손을 보태는 노력이다. 예수를 잃은 성모의 슬픔을 표현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비롯해 미술사에 있어서 매우 고전적인 주제이다.

스페인 내전 시 게르니카 참상을 소재로 한 피카소의 <우는 여자>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