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 달마고도 達磨古道 가는길 展

수윤Art Space 2018.12.19-1.20

전업화가 박성우 달마고도 가는 길


평론가들의 활동이 드물다 보니 큐레이터가 글을 쓰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기획전시 외에 작가 개인전시에 글을 쓰는 일이 잦아졌다. 큐레이터라면 자신의 전시에 글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분주하고 산만한 큐레이터에게 진중한 개인전에 관한 글을 내놓기에 여러모로 부담이 있다. 작품을 전시와 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작품에 대한 이해가 작가를 넘어서야 하는데 습관적으로 전시를 만들다보면 작가에 대해 그만큼의 이해와 애정이 자라고 있는지 스스로 의문이다. 그러나 큐레이터에게 진정한 전시는 개인전이다. 한 작가의 삶과 예술적 궤적이 담긴 온전한 개인전시를 준비하고 알리는 흥미롭고 짜릿한 경험의 기회를 갖고 싶은 큐레이터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모 작가는 “작가로 살아가는데 구태여 많은 사람과 교류가 필요한가?” 라고 물었다. 친한 화랑 주인 몇 분,한 두명의 큐레이터,소수의 컬렉터와 마음을 나눌 친구들만 있다면 작가로 살아가는 데에 문제없다는 의미에서다.큐레이터는 어떤가? 역시 수십 년 나이를 먹어 가는 작품과 작업과정을 지켜보며 때로는 단순 조력자이고 때로는 의논상대이고 때로는 머리를 맞대고 작업을 함께 고민하는 작가 몇 분이 있다면 행운이 아닐까한다. 그 점에 있어서는 모처럼 편안하다. 그만큼 경험이 혹은 세월이 축척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뜻한 남도에서 그림 그리는 박성우. 따뜻하고 너그러운 남도만큼이나 품성도 따뜻하다. 작가의 작품 역시 작가를 닮아 곱고 따스하다. 한겨울 눈 쌓인 갓바위 아래 바닷가(갓바위 100x73cm 캔버스위에유채 2008)를 그린 작품도 포근한 햇살이 느껴진다. 적어도 작가는 80년 후반 혹은 90년 초부터 30년 가까이 아주 잠깐 직장을 가졌던 일을 제외하면 전업작가로 살아왔다.


전업작가란 직업이 화가라는 뜻이다. 박성우는 수묵화가라고도 불린다. 미술대학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하였다. 80년대는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시절이다. 민속학과 민화 민요 민속탈춤 등 전통문화에 대한 열망이 지식인들 사이에 의무감 혹은 채무처럼 있었다. 관심과 연구도 증가하던 시기다. 박성우 역시 서양미술을 전공하며 유화를 그리고 있었지만 내심 전통 산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어 유화로 전통 산수를 그려보고자 했다. 캔버스에 유화로 풍경 이 아닌 산수를 그리고자 했다. 거친 붓의 분방함을 억제하고 세필로 거대한 벽과도 같은 화면을 채워나갔다. 거친 바위 산을 그리고 섬세한 숲을 그렸다. 남도의 자연은 화려하고 찬란하다. 계절이 바낄 때마다 하루의 시간이 바낄 때마다,쏟아지는 햇살에서도 구름 낀 하늘에서도 끝없이 펼쳐진 땅에도 온갖 색이 폭발하듯 화려하고 섬세하다. 남도의 자연은 높은 산으로 가려져 그늘진 자연과는 사뭇 다르다. 거칠 것 없이 횡으로 펼쳐진 들과 어디론가 끝없이 달려가는 산의 굴곡은 반듯한 규격의 사각 캔버스에 들어가지 않으려한다. 그늘 없는 넓은 들에는 온갖 자연의 향연이다. 화가가 바라보는 지점에서 보이는 풍경이 사각의 평면에 들어가려면 시각의 마술과도 같은 ‘원근법’을 활용하면 쉽게 구현된다. 그러나 화가가 들어가 호흡 하는 산수는 원근법 으로는 잡히지 않는다.


작가는 목포에 살면서 유달산 갓바위와 같은 큰 바위 암석으로 불쑥 솟은 산을 보고 자랐다. 유달산처럼 평야가운데 불쑥 장엄하게 솟은 바위산이 월출산이다. 30대와 40대의 호방한 기운은 온통 월출산 주위를 맴돌며 분출되었다. 월출산을 화폭에 담았다. 20년 시간이 흘러갔다. 같은 대상을 5년의 시차를 두고 그려진 작품도 있다. <개신리,162.0x97.0cm,캔버스위에 유채,2006/개신리2 ,130x80cra 캔버스위에유채 2011〉같은 마을 같은 구도에 일견 큰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시간의 내공이 보인다. 10년의 시간을 두고 그려진 <2011 월남리다향,159x45cm 캔버스에 유채〉과 <2006 월남리2 500호화포에 유채〉<2003 월남리 130x80cm 캔버스에 유채>는 세 차례나 같은 산을 그렸으나 화면의 해석이 사뭇 다르다.


작가는 최근 사라져가는 목포 원도심 이 안타까워 온금동 서산동 원도심과 대반동 바닷가를 소소한 일상처럼 그렸다. 그 마음결이 곱다. 그 고운 마음만큼이나 아름다운 일상을 가진 도시가 작품에 담겨졌다.<온금동,135x76cm 캔버스위에 유채 2017>와 <서산동 135><75cm 한지위에 쪽2018>이 그것이다.


“예술표현에 재료가 얼마나 중요할까?...” 당연히 많은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때로 형식이 내용을 좌우한다. 유화의 장점은 표면에 고착된 물질감과 질감의 확산이다. 반면 종이에 스며들어 한참을 머물다 배접을 하고서야 비로소 제 색을 드러내는 수묵,혹은 수묵 채색은 조형적으로 유화와는 이질적이다.풍경화는 익숙한 자연의 다름을 표현하고자한다. 같은 산을 두고 계절에 따라 작가의 취향과 특성에 따라 다른 산을 보여주고자 한다. 산수화는 산의 내면과 골격을 그리고자한다. 훈련 된 시각과 공간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섬세한 작가의 화풍과 그 특징을 표현하기에 다채로운 색상이 아닌 쪽물과 먹이 더 어울린다.작가는 목포시의 전원도시 쯤 인 무안에 9년 전 부터 살고 있다. 집 마당을 나서면 과수원 농장이고 끝없이 펼쳐진 평야이자 영산강변이다. 화가라면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길 광경이 일 년 내내 얼굴을 바꿔가며 펼쳐진다. 작가는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길 남도의 색을 차라리 안 그리고 말았다”고 한다.


작가는 처음부터 캔버스에 유화로 풍경이 아닌 산수를 담고 싶었다. 그리고 긴 시간을 돌아 어느 날부터 한지에 먹,혹은 쪽물을 먹처럼 사용하고 보니 공간이 훨씬 깊어졌다. 시점과원근을 달리 생각하*고 화면을 구성하게 되었다. 2015년부터 보이기 시작한 쪽물을 사용한 작품들은 재료의 특성상 섬세하고 독특하며,작가와도 많이 닮아있다. 또한구도가 캔버스 화면을 벗어난다. 2017년 행촌문화재단에서 진행한 남도답사 후 <미황사 58x91cm 한지위에 쪽 2017>을 작업하였다. 연달아 두 번이나 같은 구도로 그리게 되었다. 작품 <미황사>는 작가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게 된다.


2017년이 끝나갈 무렵 작가는 미황사 달마산 고지도를 손에 쥐게 된다. 달마산 달마고도가 열리면서 옛 문헌에서 나온 자료이다. 고지도를 받아든 작가는 달마고도 전체를 그려보고 싶었다. <모두 봄> <남도밥상1> <남도밥상2〉은 고지도의화법을 참조해서 그려졌다. 이전에 해보지 않은 새로운 시도였다. 

18Km나 되는 달마산 둘레를 한 번에 평면에 펼쳐 담기는 불가능하다. 3차원의 입체 공간을 평면에 펼치기 위해서는 여러 시점이 필요하다. 그것이 서양의 원근적 시점과 동양의 다시점의 다른 점이다. 화가는 부지런히 오가며 한 지점에서 뿐 아니라 어떤 때는 하늘에 높이 올라가 한눈에 바라보고,또 가장 낮은 곳에서 높이 솟은 산의 웅장함을 표현해야하고 길게 이어진 지형을 끌어당겨야 한다. 누가 봐도 사실적이지만 누구도 그곳에서 바라 본 적이 없는 낯설지만 익숙한 화면을 이끌어 내야만 한다. 전통산수를 읽을 줄 안다면 응용이 가능하다.


달마고도達摩古道전시는 박성우작가가 40대 초반 첫 개인 전을 열고 12년 만에 하는 개인전이다. 전업작가라면 매년 개인전을 하여야 전업작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인터뷰에서처럼 지역에서 매년 새로운 작품으로 개인전시를 열만한 공간도 기회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12년 동안 박성우작가의 작품은 한 결 같이 한 방향을 향해 왔다. 다만 자연을 보는 관점이 바뀌고 조형적 시점과 그에 따라 재료가 자연스레 바뀌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노동과도 같은 세필로 채워진 사각화면 속의 풍경은 어느 해 부터인가 산수로 바뀌어 있다. 9년 전 수십 번 이사 끝에 마련한 집과 작업실이 있지만 작품들이 속속 집을 차지하여 머지않아 사람이 자리를 내어주게 생겼다.

30년 전업 작가의 결과보고이다. 박성우작가의 향후 작업의 방향이 기대된다.
큐레이터들은 늘 두근거 리는 마음으로 작가의 작품을 기다린다.



행촌문화재단 대표 이승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