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음. 이방인의 고향展
행촌미술관
2021.12.21. - 2022.1.20.
변연미 신재돈
2021 행촌문화재단 레지던시 결과보고전
낯설음. 이방인의 고향
변연미와 신재돈은 평면 회화 작업을 한다. 변연미는 숲과 나무를 그리고 신재돈은 인물을 그린다. 두 작가는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았던 젊은 시절에 고향을 떠나 낯선 이국에서 예술 활동을 펼쳤다. 예술과 동행하느라 많은 것을 인내할 수밖에 없는 간단치 않은 젊은 이방인 시절을 보냈다. 이방인의 신분으로도 착실하게 성장한 변연미작가는 어느 해 부터인가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신재돈작가는 예술과 디자인의 도시 호주 멜버른과 서울에 작업실을 두고 양국을 오가며 작업 하고 있다. 그가 훌쩍 떠날 수 없었던 이유는 연로한 부모님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변연미와 신재돈은 서로 일면식도 없었다. 예술가가 해외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여 고국으로 돌아온 다는 것이 영광스러운 때도 있었다. 그 시절 예술 하는 젊은이들은 스스로 내면의 압박을 받기도 하였다. 예술의 중심, 현대미술의 중심. 그 중심으로 들어서기만 해도 자부심이 있었고 반드시 금의환향 하리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리고 수 십 년이라는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변연미는 숲. 낯선 숲에 이식된 나무를 그린다. ● 신재돈 작가는 어느 날 주변에서 환기시켜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쫓아 예술가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정작 본인은 대한민국의 남자로 성장하느라 어린시절에 칭찬받았던 재능에 대한 기억은 이미 희미해져 있었다.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뒤 낯선 나라 미술대학에 들어가 조형언어를 익혔다. 대한민국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남자에게는 매우 낯선 모험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예술가의 시각으로 본 분단된 나라. 평범과 상식을 요구하던 나라의 사회적 분위기. 그 덕에 남과 북 하늘에 존재하는 두 개의 달에 대하여 아무런 의구심도 없이 본능적으로 받아들였다. 80년 광주에서 보낸 청년기로 인해 이국의 평범한 20대와는 확연히 다른 시각을 가진 채 성장했다. 정치와 폭력 자유와 평화 그리고 예술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와 인문을 내면에 담을 수 밖에 없었다. 성인이 되어 가족을 이루고 나서야 낯선 땅에서 이방인 관찰자로서 예술가의 삶을 시작했다. 그 점이 작가가 가진 예술적 포지션 혹은 타 예술가들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검은 숲에 이식된 푸른 나무 ● 필자는 막 서른이 되던 해 유학길에 올랐었다. 그러나 준비 과정도 목적도 분명하지 않았던 탓에 가는 길에 여러 해찰을 하느라 결국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했다. 그리고 십여년전 일을 핑계로 젊은 날 떠나고자 했던 그곳에 갔었다. 그리고 과연 서른 젊은이가 그곳에 정착했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생각해보았다. 큐레이터 일을 하면서 종종현대미술의 성지라 불리는 도시에 살면서 미술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예술가를 만나고 그들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때마다 오래전 내 안의 서른 살 젊은이를 만나곤 했다. ● 유럽을 여행할 때 가장 경이로운 것은 숲이었다. 이방인이 묶는 호텔 가까이, 도시주변, 고속도로변에 자리 잡은 숲은 밤이 되면 어둠과 함께 더 가까이 다가와 있곤 했다. 어둠 속의 숲을 바라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빨간 모자와 사냥꾼, 간달프, 요정과 마녀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웅장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숲은 이방인으로는 한 발짝도 숲 안으로 들어설 용기가 나지 않는 두려운 숲이기도 했다. 그 숲은 작가의 말대로 검은 숲이다. 푸른빛이 울창하고 아름다운 한반도의 숲은 아니며 아시아의 짙은 열대우림과도 다르다. 변연미가 그리던 숲은 세잔느와 마네, 그리고 코로가 즐겨 그리던 바로 그 숲이었을 것이다. 서른의 나는 그 숲을 바라보기만 했고 변연미는 그 숲으로 들어가 깊은 어둠과 마주하고 그 검은 숲에 뿌리를 내려 숲과 함께 푸른나무가 되고자 하였다. ● 나는 변연미를 잘 알지 못한다. 변연미의 작품은 도록으로만 보았고 전시로는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변연미와의 만남을 예상하고 있었다. 2020년 혹은 2021년 새해 드디어 작가와 나는 만났다. 나는 변연미와 그녀의 예술을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회화작품은 단지 보는 것 뿐 아니라 그 존재를 마주하고 냄새와 촉감, 붓질의 방향과 속도, 선의 변화, 색과 빛의 움직임을 느껴야 비로소 보는 것이고 작품의 내용을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작품과 함께 작가의 삶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비로소 작가와 작품의 사이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투와 입모양, 눈빛, 사소한 몸짓, 그리고 손 모양이 작가를 이해하게 한다. 그녀와의 만남 이후, 내안에 두고 온 서른 살의 젊은이와 변연미는 종종 같은 길을 걸어온 친구처럼 느껴졌다. 파리의 검은 숲에서 푸른나무가 되고자 했던 작가 변연미를 고향에 소개하고, 서른 무렵의 젊은 예술가 변연미 시절부터 성숙한 예술가로 성장한 오늘까지 그녀의 예술적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예술가 변연미에 대해 좀 더 가까이, 자세히 보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그림 속 나무들이 파리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매우 반갑다. 한국으로 회향한 그녀의 나무들이 건강한 숲에서 성장하고 아름다운 꽃과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 모두의 서른 살, 젊고 혈기왕성한 예술가가 혼돈의 검은 숲을 지나 이 땅에 완숙하고 당당한 한 예술가로 성장하여 돌아왔다. 그녀의 노력과 긴 세월에 깊은 위로와 박수를 보낸다.
두 개의 달 아래 사회적 정치적 이방인으로서의 예술가 ● 모든 일은 그날 시작되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예기치 못한 행운을 만나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어려움도 맞이하게 된다. 대부분 행운과 불행은 짝을 지어 함께 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고난이 인생의 날개라고 말한다. 그러나 고난이 행운과 함께 오기는 무척 어렵다. 고난은 슬픔을 참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전라남도 신안과 진도를 잇는 바닷길, 병풍도 인근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였다. 이 사고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과 교사, 일반인 승객 총 476명 중 172명만이 구조되었고 295명이 사망했다. 9명은 실종되었다." 그날 우리는 북방한계선 위 백령도에서 며칠인가를 짙은 안개에 갇혀 있던 중이다. 며칠 만에 짙은 안개를 벗어나 드디어 움직이게 된 청해진 해운 소속 여객선을 타고 인천으로 나오는 4시간 내내 배 안에서 세월호 속보와 속보. 그리고 현장 생중계를 보았다. 그날 이후 4년 동안 추진 중이던 백령도 평화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6월이 시작된 어느 날 몇몇 작가와 나는 팽목항에 가기 위해 15년간 비어 있던 임하도수련원 문을 열고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우리의 발걸음은 백령도에서 임하도로, 북에서 남으로 향하게 되었다.
신재돈 작가는 호주 멜버른에 살고 있다. 60년대 생 80년대 학번이고 광주가 고향인 작가는 당시 두 해에 걸쳐 일시적으로 백령도에 마련된 레지던시에 머무르며 평화미술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남북의 첨예한 대립과 일련의 포격사건의 현장을 답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인으로, 광주가 고향이고 80년대 학번인 작가가 이국의 땅에서 살면서 목격한 것은 한국에서 살면서 느끼는 대한민국 내국인의 일상과는 매우 달랐다. 이국땅에 살다 보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객관적 입장으로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직접적인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고, 일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고국을 떠나 온 공간적 타자의 마음 한구석의 돌덩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크고 무거워진다. 본래 인간과 사회 존재에 대해 천착해 온 작가가 고국을 벗어나 있었던 상황이 오히려 대한민국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이 그의 작품에서 더욱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게 한 요인이 되었다.
남북 분단 80년. 매년 거르지 않고 연례적으로 벌어지는 남북의 정치적 대치상황, 김정일 사망 이후 북의 정권교체. 여전히 전 세계 언론을 뜨겁게 달구는 북의 핵무기 소식. 연평도 포격을 시작으로 미사일 개발과 발사. 이 모든 사건은 오히려 국내에 살고 있는 당사자들 보다 해외교포들에게 더욱 심각하게 느껴지곤 한다. 신재돈 작가는 한국과 호주를 오가며 우연히 참여한 백령도 프로젝트를 통해 어느 날부터 자연스럽게 남북의 정치적 거리감과 인간적 한계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백령도에서는 북한이 지척이다. 날씨 좋은 날에는 마치 이웃마을처럼 사람들의 움직임이 훤히 보인다. 자전거 타고 가는 군인 망원경으로 나를 보고 있는 북쪽의 군인... 남도 북도 땅에는 꽃이 피고 푸른 초록이 꽃처럼 피어나는 봄. 4월이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였다. 작가는 김정일 사망으로 연일 보도되는 TV속에서 매우 낯선 장면을 보게 되었다. 우는 사람들. 집단으로 맹렬하게 우는 사람들은 마치 광기어린 종교적 의식처럼 보였다. 한겨울에 추위도 마다않고 우는 사람들. 2014년 겨울, 작가의 구로동 작업실은 작품 '우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구로동작업실에서 만난 우는 사람들 틈에 백령도의 신화로 남은 부영발신부의 초상과 김정일의 장례행렬도가 있었다. 그리고 우는 사람들로 가득 찬 그림 속에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두 개의 달 아래 신재돈 작가가 서있었다.
2014년 가을 작가가 해남에 잠시 머물게 된 것도 시작은 2014년 4월 16일 그날로부터 비롯되었다. 작가가 2014년 10월 해남 문내면 임하도, 이마도스튜디오에서 머무르며 팽목항을 오가던 즈음, 팽목의 어머니들은 예술가인 그에게 크나큰 큰 영향을 미쳤다. 「우는 여자 Weeping Woman」는 진도 바다를 뒤로 하고 울고 있는 여자를 그린 작품이다. 팽목에서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슬픔'을 견디며 울고 있는 어머니의 눈물이다. 이 세상 무엇 보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심장을 잃은 대한민국 모든 어머니의 눈물이다. 심장을 잃은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 주는 일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하기 어렵다. 슬픔을 참고 인내하고 노력하는 어머니들을 지켜보는 지난하고 어려운 과정에 단지 동참할 뿐이다. 신재돈 작가의 「우는 여자 Weeping Woman」의 어머니의 눈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 장의 그림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도 그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손을 보태는 노력이다. 예수를 잃은 성모의 슬픔을 표현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비롯해 미술사에 있어서 매우 고전적인 주제이다. 스페인 내전 시 게르니카 참상을 소재로 한 피카소의 「우는 여자」도 그렇다. 작가의 「우는 여자 Weeping Woman」는 그런 관점에서 작가의 예술적 노정에서 매우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부여받았다.
Colorful World_삶의 아이러니 ● 한편으로 팽목항의 슬픔과는 어울리지 않게 남도의 넓은 들과 푸른 하늘 그리고 평온한 바다는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에게 또 다른 영감으로 다가왔다. 10월 14일 해남 우수영 5일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시작으로 삶을 지속하는 일상적인 사람들의 모습은 그러한 아이러니를 반영한다. 해남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 중 녹우당의 공재와 거북선식당 주인 최정숙은 신촌역 앞의 고교생이 되고 2021년 시흥대로를 걷는 사람으로 이어진다. 한가롭게 어슬렁거리는 「동네 개」는 이 세계의 아이러니를 반영한다.
「And Life Goes on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1991년작 다큐멘터리 제목이자, 2003년 이라크전쟁 중 바그다드 현장에 다녀온 박영숙작가의 작품제목이기도 하다. 전쟁 중인 도시 바그다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밤마다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 중임에도 새벽이면 사원에 나가 기도하고 우유를 배달하는 배달부도 일을 거르지 않고, 맑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정원에서 신문을 읽는 젊은 지식인의 품위도 유지했다. 바그다드의 젊은 신랑신부들은 결혼했고, 가족들은 매일저녁 화려한 거리의 유명 음식점으로 몰려갔다. 어렵게 바그다드에 간 작가들은 매우 당황스러웠으나 이내 그들의 일상의 희망을 '그래도 삶은 지속된다'는 깨달음을 담은 작품으로 표현했다. 삶의 아이러니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신재돈작가는 2014년 우수영 5일장에서 역동성을 느낀다. 팽목항의 슬픔이 아니라면 땅끝 해남에 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덧 작가는 우수영 5일장에서 퍼덕이는 싱싱한 생선과 형형색색의 원색아래 활기찬 상인들과 거북선식당의 솜씨 좋은 최정숙사장에게서 본능적인 삶의 에너지를 느낀다. 삶의 아이러니는 때로 유쾌함과 행복감 일상의 따뜻함으로 다채롭게 다가온다. 넓은 관엽식물로 즐비한 정원의 원탁에 마주한 심각한 사람들, 영화 주인공처럼 한껏 멋을 부리고 홍대 앞 거리를 서성이는 자신만만한 고등학생, 럭셔리한 안마의자에 앉아 온몸에 힘을 빼고 의자에 몸을 의탁한 배불뚝이 중년남자. 시흥대로를 걷는 선남선녀, 차례를 기다리는 미용실의 젊은 여성, 뉴욕의 지하철 뉴욕커들, 유럽의 쇼윈도우, 유럽과 닮은 듯 다른 멜버른의 아름다운 거리, 화려한 풀장의 사람들... 솜사탕을 든 사람 등등, 우수영과 신도림, 삶의 여행자 혹은 지구의 이방인관찰자인 작가의 일상은 다채롭고 칼라플한 삶의 아이러니로 화폭에 기록된다. 일상의 소소한 나열과 지루함 혹은 격동의 아이러니 그 자체가 삶이다. 하루도 단조롭지 않은 칼라플한 세계이다. 어떻게 그리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행촌문화재단
신재돈_PG17-22M,시흥대로,acrylic on linen,72.7x50cm,2017
신재돈_PG19-81M,달콤한 꽃,oil on linen,90.8x72.5cm,2019
신재돈_PG19-47M,Ashburton Swimming Pool,acrylic on plywood,72.7x53cm,2019
신재돈_PsP17-10M,구로동스튜디오 자화상,acrylic on linen,100x65cm,2017
변연미_다시 숲21-06_ 117x91cm_ acrylic, coffee grounds on canvas_ 2021 JPG
변연미_다시 숲21-08 91x117cm_ acrylic, coffee grounds on canvas_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