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륵암 173x138cm 한지에 먹 2020


우용민展 두륜頭輪


행촌미술관

2020.8.29. - 9.30.

2020 전남문화재단 레지던시지원사업 

우용민_두륜頭輪2020. 08. 29._09. 30. 행촌미술관


2020년 4월 24일 금요일. 우용민작가는 겨울부터 미뤘던 해남 방문을 결행하였다. 그 사이 해남에서는 매화가 장하게 꽃을 피웠었고, 꽃이 진 자리마다 푸른 청매실이 밤낮없이 크고 있었다. 길마다 산마다 벚꽃이 하얗게 피어 아침이면 하얀 눈 같은 벚꽃 잎들을 바람에 분분히 흩뿌리다가 가만히 작고 푸른 잎들을 꽃처럼 피워내고 있었다. 그리고 길가에 밭둑에 지난해 떨어진 씨앗으로 유채꽃, 갓꽃 배추꽃 장다리 무꽃 대파꽃이 지천이다. 하얗게 빛나던 벚꽃이 떨어지자 땅 가까이 노란 유채와 조금 더 여린 무꽃이 한창이었다. 봄바람은 겨울보다 날카롭다. 한겨울 눈보라를 견디어 낸 나무들도 잠시 꽃구경으로 방심한 사이 봄바람에 뿌리까지 흔들린다. 그 바람 사이사이 지혜로운 농부들은 밭을 일구고 종자를 심고 싹을 틔운다. 그렇게 해남 붉은 땅들이 유채꽃으로 노랑, 나무 잎의 어린 새순들이 신록의 달리기를 하던 날 우용민작가는 해남에 왔다.


서울에서 부터 5시간을 달려 해남에 도착한 작가는 두륜산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 두륜산과 인사를 하고 화구를 펼쳤다. 두륜산을 그리는 도중 마을 어른들이 알은체를 하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그렇게 어느 날보다 아쉬운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다 저녁이 되어 만난 작가와 나는 두륜산을 넘어갔다. 두륜산 등을 넘어가려면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두륜산 오소재를 넘어가야한다. 오소재 고개에 이르면 구불구불한 해안선과 눈부신 남쪽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작가는 연꽃 같은 두륜산 안쪽에서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지 항상 궁금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동안 산 정상 가까이에 올라가 그림을 그렸었는데 이번에는 산 아래 마을에서 산봉우리를 올려다보면서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우용민작가가 해남에 오는 이유는 그리움 때문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예술에 대한 열망을 풀어줄 대상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 말이다.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고된 훈련을 거쳐야한다. 미술대학에 가서 스승을 만나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친구 선배 후배 다른 대학 출신의 동료를 만들고 전시회에 참가하고 몇 번의 개인전을 열게 되면 비로소 미술계에서만 통용되는 실체 없는 작가면허증을 갖는다. 그사이 십수년이 지나간다. 그렇다고 완전한 작가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때쯤 되면 자신이 화단의 주류인지 비주류인지도 눈치 채게 된다. 작은 개울물이 여러 개 모여 연못에 이르고 그 연못들이 몇 개 모이면 저수지가 되고 저수지가 흘러넘쳐 강에 이르고 세차게 강을 달려가야만 바다에 다다른다. 그러나 대양까지 이르는 예술가도 드물고, 드디어 바다에 다다른 뒤 거대한 바닷물에 섞인 채 존재도 분명치 않게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예술의 길이고 당대 미술계에서 스타가 나타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라면 누구든 작은 수원지에서부터 자신만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누구든 반드시 바다로 달려가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지점에선가 모두가 달리는 주류에서 스스로 몸을 빼고 빠져나와 발길을 멈추고 꽃을 피울 수도 있다. 자신을 낮추고 주변이 꽃피도록 마중물이 되어 줄 수도 있다. 어쩌면 예술의 본질이 그런 것이리라. 산 너머 어딘가, 바다 건너 어딘가, 모르는 곳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리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공감하고 소통하고 시대의 기록으로 남기고 후대에 전하는 것 말이다. 우용민작가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쯤 가고 있을까? 예술가의 작업은 종종 농부의 농사와도 같다. 농부가 심은 종자가 싹트고 자라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농부의 손길이 수 천번 닿아야한다. 좋은 작가의 예술적 자질은 작업량과도 비례한다. 농부처럼 묵묵히 성실하게 그림농사를 지은 결과를 통해 남보다 실한 독보적인 작품을 보여 주는 작가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우용민작가 역시 그 누구보다 성실하고 부지런하다. 4월의 유채꽃 핀 해안가에서 두륜산의 등을 바라보며 작업하고 있는 작가의 등을 보았다. 봄바람은 다정했고, 햇살도 부드러웠다. 밭둑과 길가 해안가를 물들인 노란 유채가 작가의 그림 안으로 스며들었다.


<두륜>展은 우용민 작가의 2019년 03월부터 2020년 8월까지 530일 동안 작업한 해남 두륜산 대흥사에 대한 예술적 기록이다. 작가는 동 기간 동안 약 60여점의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그 중천년의 시간을 견디고 보수를 위해 해체된 대흥사 대웅보전의 마지막 모습은 역사적 기록으로도 의미를 가진다. 또한 두륜산 대흥사 북암 남암 일지암 천불전 표충사 등 우리시대 대흥사의 구석구석을 화폭에 기록하였다.


이 승 미 행촌미술관



대흥사가는길 48x74cm 한지에 먹 2020

장독대 38x64cm 한지에 먹 2020

일지암 74x140 한지에 먹 2019